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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folding 【언어별 표기】 | <tablebgcolor=white><colbgcolor=#ccc> 한국어 | 도하의 기적(Doha의 奇蹟) |
일본어 | ドーハの[ruby(悲, ruby=ひ)][ruby(劇, ruby=げき)][J] | |
영어 | Agony of Doha[J] Miracle of Doha[K] | |
아랍어 | عذاب الدوحة[J] معجزة الدوحة[K] |
대한민국 축구에서 도하의 기적, 혹은 일본 축구에서 도하의 비극은 1993년 10월 28일, 도하에서 열린 1994 FIFA 월드컵 미국의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마지막 경기에서 최종전 종료 1분을 앞두고 마지막 본선 진출권의 주인이 일본에서 대한민국으로 뒤바뀐 극적인 사태를 일컫는 표현이다.
2. 전개
1994 FIFA 월드컵 미국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 ||
카타르 클럽 경기장[6] (카타르, 도하) | ||
주심: 이온 크러치우네스쿠 (루마니아) | ||
3 : 0 | ||
대한민국 | 북한 | |
49′ 고정운 53′ 황선홍 75′ 하석주 | 득점자 | - |
1994 FIFA 월드컵 미국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 | ||
알 아흘리 경기장[7] (카타르, 도하) | ||
주심: 세르주 무헌터헬러 (스위스) | ||
중계 방송: | 시청률: 48.1% | ||
2 : 2 | ||
일본 | 이라크 | |
5′ 미우라 카즈요시 80′ 나카야마 마사시 | 득점자 | 54′ 라디 셰냐이셸 90+1′ 움란 자파르 |
대한민국 축구계에서는 도하의 기적이라 부르며 감격스러워하지만 반대로 일본 축구계에서는 '도하의 비극'이라고 부르며 매우 비통해한다. 이 사건 이후 일본의 1992 AFC 아시안컵 일본 우승을 이끌며 명장으로 추앙받았던 네덜란드 출신의 한스 오프트 감독은 거의 다 잡은 당시 94 FIFA 월드컵 24개국 본선 진출 티켓을 눈 앞에서 놓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임했다.[8]
이 도하의 기적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일본을 간신히 제치고 아시아예선 풀리그[9] 준우승(2위)으로[10] 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을 차지하는 데에 성공했다. 그리고 일본을 몇 수 아래라면서 깔보고 무시했던 대한민국은 최종예선 도중 일본에게 0:1로 지면서 일본 축구계가 J리그 발족 등으로 실력이 크게 성장한 것을 몸소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11]
이때부터 한국에서는 일본에 대한 라이벌 의식이 점점 높아지기 시작했고 2002년 FIFA 월드컵 유치 경쟁과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 최종 예선에서 같은 조로 편성되자 더욱 절정에 이르렀다. 그리고 후일 이는 도쿄 대첩으로 다시 한 번 승화됐다.
이때 본선 진출에 실패하면서 2002년 월드컵 개최를 목표로 장기 계획을 세웠던 일본은 지금까지 한 번도 월드컵 본선 진출도 못 한 나라가 돈으로 본선 진출권을 사려고 한다는 비판에 시달렸다. 이런 약점이 크게 작용하는 바람에 뒤늦게 유치에 뛰어든 대한민국과 벌인 유치 경쟁에서 힘을 크게 잃어 끝내 1996년에 양국 공동 개최 결정이라는 타협점으로 물러서야 했다.
참고로 도하의 기적이 없었다면 중국의 2002년 월드컵 본선 진출도 없었을 것이다. 애시당초 중국이 2002년에 본선 진출을 한 가장 큰 요인 중 하나가 바로 한국과 일본이 주최국 자격을 얻어서 예선에 참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비록 한국과 일본의 진출로 아시아에 배정된 티켓 수가 적어지긴 했지만 그걸 상쇄하고도 남을 정도로 중국에 있어서 당시 한국 및 일본 축구 대표팀은 거대한 벽이었기 때문. 그리고 중국은 2002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등의 강호를 모두 피한 꿀조에 편성되는 행운을 만나서 B조 1위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할 수 있었다. A~B조 1위가 본선에 직행하고 A~B조 2위가 홈 앤드 어웨이로 플레이오프를 치러 이긴 팀이 유럽과의 대륙간 플레이오프를 거쳐야 했으니 만약 한국이나 일본 중 어느 한 나라가 있었더라면 중국의 월드컵 본선 진출은 매우 불투명했다.
명실상부 대한민국의 월드컵 10회 연속 본선 진출 과정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으로 꼽히는 순간이다.[12]
위 사진은 1994 FIFA 월드컵 미국 아시아 최종 예선 마지막 경기 이라크전에서 2:1로 앞서다가 경기가 끝날 무렵 동점골을 내주고 비긴 후, 본선 진출에 실패한 것을 알고 허망하게 주저앉아 버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위)[13], 그리고 일본과 이라크가 2:2로 비겼다는 소식을 들은 후 극적으로 드라마틱한 본선 진출 성공에 환호하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아래)의 희비가 교차하는 모습이다.
불과 경기 종료 10초 전에 극적으로 지옥에서 천국으로 올라간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거꾸로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진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운명이 뒤바뀌는 모습을 담은 중계방송 화면이다.
경기가 끝난 후 이튿날 스포츠서울에 실린 기사.
2.1. 암울한 상황
1993년 10월 카타르에서 열린 1994 미국 월드컵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에는 대한민국, 일본, 북한,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6개국이 참가한 상태였다. 대한민국은 첫 번째 경기에서 난적 이란을 만났지만, 하석주, 박정배, 고정운이 연속 골을 터뜨리며 3:0으로 손쉽게 승리를 따내며 쾌조의 스타트를 끊었다. 하지만 그 이후의 행보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두 번째 경기인 이라크전에서는 김판근과 홍명보의 골로 2:1로 앞서나가다가 후반 종료 5분을 남기고 동점골을 내주며 2:2로 비겼고, 이어진 세 번째 경기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는 후반 15분 신홍기의 크로스를 사우디아라비아의 골키퍼가 알까기를 하면서 선취점을 얻어냈지만 종료 직전에 상대 수비수 아메드 마다니에게 통한의 동점 헤딩골을 내주면서 다시 한 번 뼈아픈 무승부를 기록했다.그리고 이어진 네 번째 경기 상대는 숙적 일본이었다. 이 당시까지만 해도 역대 전적상은 물론 최근 상대 전적에서도 대한민국이 일본을 압도하고 있었고, 객관적인 전력도 한국이 좀 더 우위에 있었던 데다가 지금까지 한국은 월드컵 예선에서 일본에 단 한 번도 패배했 적이 없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일본 축구를 한 수 아래로 얕잡아보고 있었던 인식이 강했다. 하지만, 당시 일본은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던 미우라 카즈요시, 나카야마 마사시로 이루어진 가공할 만한 공격력이 있었고 브라질 출신 선수였던 라모스 루이까지 일본으로 귀화시키면서 한국을 상대할 수 있는 최강의 전력을 조성하고 만반의 준비를 갖춘 상황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운명의 한일전에서 양 팀은 일진일퇴의 공방전을 벌이면서 경기를 진행했다. 하지만, 주전 공격수 황선홍이 경고 누적으로 결장한 한국에 비해 미우라 카즈요시와 나카야마 마사시가 포진한 일본의 공격력은 한국을 앞서기 시작했다. 일본은 전반전에만 두 번이나 골대를 맞추면서 한국을 몰아붙인 반면에 한국은 오히려 전반 34분 노정윤이 일본 골키퍼와 충돌하면서 부상을 당했고, 플레이메이커로서 한국의 공격을 책임지던 노정윤의 부재는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불러왔다. 더군다나 이 당시의 노정윤은 J리그 산프레체 히로시마 소속으로 뛰고 있었을 때였고, 시기상 J리그가 출범한 지 얼마 안 되어서 일본 프로축구에 해박한 선수가 많이 없었을 때였으니 전략적으로도 커다란 손실이었다.
결국 후반 14분 나카야마에게서 패스를 받은 미우라 카즈요시가 최인영 골키퍼와 골문 사이로 때린 슈팅이 골로 이어지는 바람에 한국은 경기의 주도권과 흐름을 내주었고 이를 만회하지 못하는 바람에 결국 0:1로 패배한다. 이로 인해 한국은 자력으로 월드컵 본선에 나갈 기회가 날아가면서 월드컵 본선 진출이 매우 불투명해졌다. 참고로, 이 경기의 1994년 미국 월드컵 최종예선 조별리그 한일전은 일본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FIFA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무려 40년 만에 처음으로 승리한 경기였다.
그렇게 모든 팀이 4경기를 마치고 최종전을 앞두게 되었고, 두 장(우승&준우승)의 본선 진출권이 걸려있는 상황에서 아래의 표와 같이 순위가 형성되었다.
팀 | 승점 | 승 | 무 | 패 | 득 | 실 | 차 | 비고 | |
일본 | 5 | 2 | 1 | 1 | 5 | 2 | +3 | ||
사우디아라비아 | 5 | 1 | 3 | 0 | 4 | 3 | +1 | ||
대한민국 | 4 | 1 | 2 | 1 | 6 | 4 | +2 | ||
이라크 | 4 | 1 | 2 | 1 | 7 | 7 | 0 | ||
이란 | 4 | 2 | 0 | 2 | 5 | 7 | -2 | ||
북한 | 2 | 1 | 0 | 3 | 5 | 9 | -4 | 탈락 확정 |
- 북한 상대로 가급적 많은 골을 넣으면서 이긴다.
- 사우디아라비아나 일본 중 적어도 한 팀은 이기지 못해야 한다.
2.1.1. 울트라 닛폰의 KEROA 현수막 파동
한일전이 있던 10월 25일 일본 응원단 울트라 닛폰 중 한 무리가 "JAPAN 1 - KEROA 0"라고 적힌 현수막을 걸어서 혐한 논란이 일어난 적이 있다. 당시 기사 단순히 KOREA의 오기처럼 보이지만, KEROA에서 A를 떼면 하인을 뜻하는 下郞(Gerou)와 발음이 유사해보이기 때문에 의도적인 애너그램이라고 해석한 한국인들이 격분한 것이다. 이에 일본 측은 발음의 연관성이 떨어진다고 반론했다.이후 야구 한일전에서는 한국 응원단측에서 'NIMIPPON'이라는 응원문구를 거는 식으로 응수하기도 했다고 한다.
한때의 해프닝이라 지금은 거의 잊혀진 일이지만, 지금까지도 혐한 중에서는 이런 것들까지 발굴하여 한국인 비하 명칭으로 써먹는 경우가 있다.
2.2. 최종 예선 마지막 경기
2.2.1. 전반전
경기 시간 | 상황 | 점수 | |||||
킥오프 | 세 경기장의 경기가 동시에 시작되었다. | 0 : 0 | 0 : 0 | 0 : 0 | |||
전반 5분 | 일본의 나카야마가 때린 슈팅이 크로스바를 맞고 나오자 미우라가 헤딩으로 밀어넣으며 선취골을 넣었다. | 1 : 0 | |||||
전반 21분 | 사우디아라비아의 사미 알 자베르가 골키퍼와 맞붙은 기회에서 침착한 칩슛으로 선제골을 넣었다. | 1 : 0 | |||||
전반 27분 | 사우디아라비아의 메할렐이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추가 골을 얻었다. | 2 : 0 | |||||
전반 43분 | 이란의 포노우니자데가 강력한 왼발 프리킥으로 만회골을 성공시켰다. | 2 : 1 | |||||
전반 종료 |
대한민국 입장에서는 주적 북한에게 다득점 승리를 해도 월드컵 진출이 불투명한 마당에 전반전에 한 골도 뽑아내지 못하였고 한 마디로 최악의 시나리오로 흘러가고 있었다. 심지어 이 시점 조 1위인 사우디와 일본이 모두 이기고 있어 그대로 탈락할 가능성마저 생겼다. 물론 공은 둥글고, 축구는 90분의 게임이기에 속단하기에는 일렀다.
2.2.2. 후반전
경기 시간 | 상황 | 점수 | |||||
후반 킥오프 | 경기가 동시에 시작되었다. | 2 : 1 | 1 : 0 | 0 : 0 | |||
후반 2분 |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모우사가 알 자베르가 놓친 볼을 밀어넣으며 추가골을 넣었다. 이로서 사우디아라비아는 본선 진출을 거의 확정지었다. | 3 : 1 | |||||
후반 4분 | 대한민국의 고정운이 김현석의 크로스를 받아서 헤딩골을 만들어내며 일본을 바짝 추격했다. | 1 : 0 | |||||
후반 7분 | 이란의 포노우니자데가 빨랫줄 같은 중거리 슛으로 만회골을 넣으며 사우디아라비아를 압박했다. | 3 : 2 | |||||
후반 8분 | 대한민국의 황선홍이 김현석의 크로스를 받아 논스톱 슈팅으로 추가골을 넣었다. | 2 : 0 | |||||
후반 9분 | 이라크의 라흐디가 문전 혼전상황에서 왼발 슛으로 동점골을 넣었다. | 1 : 1 | |||||
후반 29분 | 사우디아라비아의 팔라타가 코너킥 상황에서 헤딩으로 본선 진출을 확정짓는 네 번째 골을 성공시켰다. | 4 : 2 | |||||
후반 30분 | 대한민국의 하석주가 오른발 밀어넣기로 세 번째 골을 넣었다. | 3 : 0 | |||||
후반 35분 | 라모스의 패스를 받은 나카야마가 그대로 골을 넣으면서 일본이 다시 앞서나갔다. | 2 : 1 | |||||
후반 45분 | 이란의 자바드 마나피가 알리 다에이의 패스를 받아 만회골을 넣었다. 이 골을 끝으로 이란 vs 사우디아라비아 경기가 끝났고 대한민국 vs 북한 경기도 종료되었다. | 4 : 3 |
월드컵 진출 실패 위기에 몰린 정신력의 발로인지, 이미 떨어진 북한의 뜨거운 동포애(?)였는지 후반전에 북한의 수비진은 순식간에 무너지며 한국에 내리 세 골을 연달아 헌납했다. 게다가 이라크가 동점골을 넣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상황이었다.
경기 전에 북한 대표팀 감독은 "기왕이면 같은 동포가 진출하는 게 좋지 않겠냐?"라는 내용의 인터뷰를 했다. 다만 선수들은 그 반대였던 모양인데, 당시 대표팀 선수였던 신홍기가 이후 MBC의 "히스토리 후"를 통해 회고한 후일담에서 "어차피 북한은 탈락이 확정되었으니, 제발 같은 동포니까 좀 봐 달라."라고 부탁을 했더니 한 북한 선수는 "우리도 당신들에게 패배하면 인민재판으로 넘어갈지 모른다."라고 말하며 거절했다고 한다.[15]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이 추가골을 넣어서 2:1로 다시 앞서갔다. 다른 경기에서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이란을 난타전 끝에 4:3으로 잡았으며, 대한민국 vs 북한 경기도 3:0으로 종료되었다. 모든 경기가 이대로 종료되었다면
팀 | 승 | 무 | 패 | 득 | 실 | 차 | 승점 | |
일본 | 3 | 1 | 1 | 7 | 3 | +4 | 7 | |
사우디아라비아 | 2 | 3 | 0 | 8 | 6 | +2 | 7 | |
대한민국 | 2 | 2 | 1 | 9 | 4 | +5 | 6 | |
이라크 | 1 | 2 | 2 | 8 | 9 | -1 | 4 | |
이란 | 2 | 0 | 3 | 8 | 11 | -3 | 4 | |
북한 | 1 | 0 | 4 | 5 | 12 | -7 | 2 |
이런 상황이었다. 때문에 한국 선수들은 북한을 상대로 3-0 완승을 거두고도 고개를 떨궜고, 일부 선수들은 "결국 최종예선에서 탈락했다." 란 생각에 머리를 감싸고 눈물을 쏟기 시작했으며, 반면 일본은 이미 월드컵 진출을 확정 지은 것같은 분위기었으며, 몇몇 일본 국민들은 축제를 준비하고 있었다.
2.2.3. 경기 종료 10초 전에 벌어진 기적
최종 점수 | |||||
4 : 3 | 2 : 2 | 3 : 0 |
그런데 대한민국 vs 북한 경기가 종료되기 10초 전이었을 때 일본 vs 이라크 경기는 주심의 추가시간 적용으로 인해 경기 종료 1분 전이었다. 이때 2:1로 일본이 앞서있던 상황에서 이라크의 움란 자파르[16]가 후반 추가시간에 선언된 코너킥 상황에서 우측에서 올라온 크로스에 머리를 틀면서 시도한 헤딩슛이 극적으로 골대 안으로 들어가면서 2:2로 동점이 되고 말았다. 결국, 헤딩골이 들어가는 동시에 사우디아라비아가 이긴 걸 알고 있었던[17] 일본 선수들은 허탈감에 그 자리에서 완전히 주저앉았다.[18]
특히 역전골을 넣었던 나카야마 마사시는 이라크의 동점골을 목격하고 정신적으로 큰 충격을 받아 머리를 감싸쥐고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이 때 나카야마 마사시가 벤치에서 미우라 카즈요시가 이라크 선수의 역동작에 걸리면서 크로스를 허용한 뒤 극적으로 동점골을 내줬을 때 "カズさん! カズさん! ああ!! もう!!" (카즈씨! 카즈씨! 아!! 진짜!!!)[19] 라면서 왜 크로스를 허용해서 골을 내줬냐고 원망하는 목소리를 냈었다고 한다.[20] 그 뒤 30초쯤 지난 후에 주심이 경기 종료 휘슬을 불면서 일본 vs 이라크 경기는 그대로 2:2 무승부로 끝났다.
이로써 대한민국과 일본은 2승 2무 1패, 승점은 6점으로 동률이 되었지만 골득실에서 대한민국이 일본보다 두 골을 더 앞서면서 한국은 3회 연속 FIFA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했다. 반면에 일본은 마지막 20초를 못 버텨냈고 동점골을 내주면서 극적으로 비기는 바람에 첫 월드컵 본선진출의 꿈은 저 멀리 대한민국으로 날아가버리고 말았다. 경기 종료까지 불과 1분도 안 남은 시점에서 터진 동점골이 대한민국과 일본의 운명을 완전히 뒤바꿔놓았다.
그리고, 이 소식은 워키토키를 통해 대한민국 vs 북한 경기가 종료된 후 한국 선수들이 벤치로 걸어들어오던 도중에 전달되었다. 그래서 경기를 3:0으로 승리를 했어도 죄인처럼 고개를 숙이고 미리 눈물을 흘리면서 힘없이 벤치로 걸어들어오던 한국 선수들이 제일 앞에 있던 고정운을 필두로 갑자기 만세를 부르면서 벤치로 뛰어가는 명장면이 연출되었고, 슬픔의 눈물은 기쁨의 눈물로 바뀌었다. 또한, 선수들은 물론이고 코칭 스태프들까지 서로 부둥켜안고 감격스러운 눈물을 쏟아냈으며 이를 지켜보던 한국 축구 팬들도 모두 감격했다.
경기를 중계하던 캐스터는 침울한 목소리로 중계를 하다가 갑자기 들어온 이 소식에 흥분한 나머지 "아! 국민 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오! 이라크가 동점골을 넣었습니다! 일본은 탈라아아아아아악! 한국이 진출합니다!" 라는 샤우팅을 보이기도 했다. 축구 컨텐츠 유튜브인 이스타TV에서 이주헌 해설이 역대 한일전을 다루는 컨텐츠에서 푼 시청 후기 내용에 따르면 KBS와 MBC 중계에서는 "대한민국이 진출합니다!!!" 라고 했고 SBS 중계에서는 "일본 탈라아아아아악!!!" 이라는 명언(?)을 남겼다고 한다.
물론, 반대로 이렇게 충격적인 예선탈락을 받아들이게 된 일본 열도는 완전히 전국이 초상집으로 바뀌었다. 움란 자파르의 헤딩골이 들어가는 순간 일본의 모든 선수단은 그라운드에 주저앉아서 눈물샘이 마를 때까지 눈물을 흘렸으며, 일본 응원단들도 누구라고 할 것도 없이 다들 거리에 주저앉아서 통곡했다.
여기에 첨부된 동영상에서도 나오지만, 이라크의 동점골이 들어가는 것과 동시에 본국에서 TV로 경기를 시청하는 중이던 일본 팬들은 그냥 찬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그 당시 일본의 방송국에서는 일본 대표팀 선수들의 가족들과 실시간으로 같이 응원하는 생방송 촬영을 하기도 했었는데, 1분을 남기고 충격적인 예선 탈락의 결과를 국민들과 다같이 바라보는 것이나 다름없었으니 더더욱 잔인한 상황이었던 셈이다.
일본 열도를 깊은 비탄과 충격에 빠뜨린 이 사건을 통틀어서 일본 언론들은 '도하의 비극' 이라고 불렀고[21] 반대로 대한민국은 도하의 기적이라고 부르면서 극적인 본선 진출에 행복한 웃음을 지었다.
다만, 일각에서는 "우리 대한민국이 자력으로 본선진출을 이뤄내지 못하고 오히려 본선진출을 당한 건데 도대체 뭐가 그리 기뻐할 일이냐?" 라면서 질책하는 의견도 있었는데, 승부처에서 일본에 졌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여론이 상당히 높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패배가 월드컵 지역예선 40년만에 한일전에서 기록한 첫 패배였으니 비난이 없었다면 오히려 그게 이상했다. 지역예선 조별리그만 하더라도 한국은 일본전은 가뿐히 이기고 들어간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나마 본선진출을 했기에 망정이지, 만약에 이라크가 동점골을 기록하지 못하고 그대로 일본이 승리해 본선진출을 했었더라면 한국 축구는 가루가 될 때까지 까였을 분위기였다. 게다가 조별리그 내용도 좋지 않았는데 이란에 3:0으로 승리하면서 시작은 좋았으나 다음 경기였던 이라크전과 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각각 2:2, 1:1 무승부를 당하고 만것이다. 더욱이 이 두 경기는 이길 수 있었던 경기를 다 무승부로 끝낸 것이어서 말들이 많았고 그 와중에 일본에 사상 첫 패배를 당한 것이라 엄청난 쇼크였었다. 그리고 만일 일본이 승리하여 본선진출을 이뤘다면 한국으로서는 일본전의 패배가 그 원인이 되는셈이므로 비난의 강도가 무척이나 강했을 태세였다.
그리고 도하의 기적 이후의 시기를 기점으로 일본은 더 이상 한국이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승점자판기 및 호구라는 타이틀을 벗어던졌다. 이제는 경기력도 대등해졌을뿐 아니라 역으로 한국을 곤경에 처하게끔 만드는 상황도 잦아졌다. 따라서 이 당시 한국이 가까스로라도 본선진출을 이룬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2.2.3.1. 구국의 영웅, 움란 자파르
이 당시 극적인 헤딩 골을 넣었던 이라크의 선수는 스트라이커였던 움란 자파르 선수였다.[22]이튿날, 주한 이라크 대사관에는 축구팬들에게서 온 감사 전화 및 팩스가 폭주했다. 이 당시는 걸프전이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어 국제사회에서 이라크의 이미지가 매우 형편없던 시절이라 당시 주한 이라크 대사관에서는 "이라크 정부가 몇 년을 노력해도 되지 못했던 것을 단 한 순간에 해냈다."고 극찬했다.
움란 자파르 선수는 훗날 대한민국으로 초대되어 영웅으로[23] 환대를 받았으며, 대한축구협회에서는 감사의 표시로 이라크 축구 선수들에게 유니폼, 축구공, 축구화 등 여러 가지 장비들을 지원했다. 또한 그는 "K리그에 진출하고 싶다."는 의사를 나타내기도 했으나, 성사되지는 못했다. 그래도 이후 이라크 선수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결국 96년 안양 LG 치타스가 아바스 오베이드 자심과 사디크 사둔 압둘리다를 영입하였다. 이 중 자심은 안양 LG 치타스와 포항 스틸러스를 거치며 2001년까지 5년 간 준수한 활약을 했고, 이라크 선수가 K리그에서도 나름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당시 인터뷰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국내 팬들은 물론, 현장에서 직접 뛴 나 자신도 이 대회는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부국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고 느꼈다. 심지어, 뇌물 공여나 심판 매수를 했다는 의구심이 들었다. 이라크는 이 같은 경기 외적인 요인 때문에 희생양이 됐다고 생각한다. 이라크의 명예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다면 승패에 관계없이 최선을 다한다는 각오로 경기에 임했으며, 우리가 본선 진출의 가능성이 희박해진 후에도 마지막까지 열심히 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라크 선수들은 움란 자파르의 동점골 이후에도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 오히려 골대 안으로 들어가서 그물에 걸린 공을 주워 들며 덤덤하게 센터서클 쪽으로 가져갔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이 시점에서 이라크가 본선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최소 석 점 차 이상으로 일본을 이겼어야만 했다.[24] 이라크 처지에서는 동점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무승부나 패하는 것이나 딱히 큰 의미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1993년 당시 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의 코치로 있었던 야흐야 만헬 감독은 2006년부터 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으로 선임되었는데, 대한민국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도하의 기적을 추억하면서, "그때는 대한민국보다 북한이 너무 약했다."고 평가했고[25], "1993년 당시, 일본 선수들이 비긴 후 그라운드에 쓰러져서 펑펑 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경기가 끝난 후, 대한민국 팀이 머물던 호텔로 가서 "자신이 이라크 국가대표 코치다."라고 했더니 대한민국 선수들이 서로 껴안으며 고맙다고 환호해 주었다는 이야기를 했다. 링크
한편, 이라크의 첫 번째 골을 넣었던 선수는 바로 2015년 AFC 아시안컵에서 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을 역임했던 라흐디 세나이실이다. 당시 대회 4강전인 대한민국과 이라크의 경기 하루 전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라흐디 세나이실 감독은 기자에게 "도하의 비극을 기억하느냐?"라는 질문을 받자, "물론 똑똑히 기억한다. 내게도 인상 깊은 경기였다."라며 "그 때 일본에 미우라, 라모스, 곱슬머리 선수(기타자와) 등이 있었던 게 생각난다. 나카야마의 골은 굉장히 강력했다."라고 대답했다. #
3. 최종 예선 결과
팀 | 승점 | 승 | 무 | 패 | 득 | 실 | 차 | 결과 |
사우디아라비아 | 7 | 2 | 3 | 0 | 8 | 6 | +2 | 24강 본선 진출 |
대한민국 | 6 | 2 | 2 | 1 | 9 | 4 | +5 | |
일본 | 6 | 2 | 2 | 1 | 7 | 4 | +3 | 탈락 |
이라크 | 5 | 1 | 3 | 1 | 9 | 9 | 0 | |
이란 | 4 | 2 | 0 | 3 | 8 | 11 | -3 | |
북한 | 2 | 1 | 0 | 4 | 5 | 12 | -7 |
SRR | ||||||
−−− | 1-2 | 3-2 | 1-2 | 0-3 | 0-3 | |
2-1 | −−− | 1-1 | 4-3 | 0-0 | 1-1 | |
2-3 | 1-1 | −−− | 2-1 | 2-2 | 2-2 | |
2-1 | 3-4 | 1-2 | −−− | 2-1 | 0-3 | |
3-0 | 0-0 | 2-2 | 1-2 | −−− | 1-0 | |
3-0 | 1-1 | 2-2 | 3-0 | 0-1 | −−− |
이렇게 우여곡절 끝에 1994 FIFA 월드컵 미국 본선에 진출하는 아시아 국가는 우승 진출 사우디아라비아와 준우승 진출 대한민국으로 정해졌다.
4. 후폭풍
1992년, 일본은 프로축구리그인 J리그를 야심차게 창설했고 자국에서 개최한 1992년 AFC 아시안컵까지 우승을 거머쥐는데 성공하면서 전국적으로 사기가 최고조로 크게 오른 상황이었다.이와 반대로 한국에서는 충격적으로 당시 8개국(8강) 본선 1992 AFC 아시안컵 일본에 진출 실패하고 말았다. 그 원인은 신문선이 대학교 선수들을 위주로 선수를 선발하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대처를 했기 때문이었는데, 예선에서 국가대표팀이 아니라 대학 선발팀을 내보냈다가 8강 본선 조별리그에도 못 가보고 태국을 상대로 참패를 하면서 쓴 맛을 보았다.[26] 결국, 탈락의 후폭풍으로 당시 김우중 대한축구협회장은 "앞으로 내가 신문선 패거리와 상종을 하면 사람이 아니라 개다." 라는 명언을 남기면서 사임을 하게 되었고 이후 범 현대가의 장기집권이 시작되었다.
일본은 아시안컵에서 첫 우승을 해낸 기세를 몰아 1994 FIFA 월드컵 미국의 첫 본선진출을 노리면서 "역대 스쿼드들 중에서 가장 강한 팀이다."
그동안 일본은 아시아에 월드컵 24강 본선 진출권 2장이 주어졌던 시대인 월드컵까지는 월드컵 본선 진출이 전무했고, 1998 FIFA 월드컵에서 32강 본선으로 확대되어 아시아에 월드컵 본선 진출권이 거의 두 배인 3.5장으로 늘어나서 월드컵 본선에 첫 진출할 수 있었다. 실제로, 1954년, 1962년, 1970년, 1978년, 1986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언제나 한국이 일본의 눈 앞에서 군림하며 발목을 잡고 가로막으면서 예선탈락을 시키기도 했다. 특히, 1986년 월드컵 지역예선에서는 한국과 일본이 본선진출 티켓 1장을 두고 홈 앤드 어웨이에서 모두 승리하기도 했다.
그리고 일본의 기업들은 자국의 월드컵 진출을 거의 확실시하여 일본 축구 대표팀 관련 상품을 대량생산했는데 이 사건으로 인해 대부분 폐기 처분되었다.
영상의 남성 진행자는 위닝 일레븐의 해설자로 유명한 존 카비라의 형제 지에이 카비라.
당시 해설을 맡았던 오카다 다케시 감독은, "이제야 일본 대표팀이 아시아 축구로서 어느 정도 수준이 올라가서 비슷해졌다고 생각했는데, 본선 진출에 실패해서 너무나도 슬프다."라는 말을 했고, 해설 도중 눈물을 흘리면서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사실, 오카다 감독이 이렇게 이야기를 한 뒷배경이 있는데, 불과 2년 전 자국에서 열린 아시안컵 우승 이전에 일본 축구는 그야말로 아시아권에서도 동네북 수준이었다. 중국에게도 심심하면 발리기 일쑤였고, 오죽하면 이때까지 한국에선 한일전보다 남북전, 중동전이 더욱 중요하다고 말할 정도였다. 게다가 J리그도 만들어진게 겨우 2년 밖에 되지 않았던 때였고 본격적인 축구에 대한 투자가 시작되기도 전이었기 때문에, 2년 전 아시안컵에서 우승을 달성하고도 일본 국내에서는 자신들의 실력에 의문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리고 "일본은 왜 본선 진출에 실패했는가?"를 진지하게 토론하는 프로그램도 방송되는 등, 일본 열도는 전국적으로 큰 허탈감에 빠졌다. 자신들이 이긴 대한민국에 본선진출 티켓을 빼앗겼으니 허탈할 지경이었다.
반면 대한민국은 "국민 여러분, 기뻐해 주십시오! 대한민국이 일본을 극적으로 제치고 월드컵 3회 연속 본선 진출을 해냈습니다!"라며 낭보를 전했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감동적인 월드컵 본선 3연속 진출을 확정지었고, 일본은 최초의 월드컵 본선 진출의 기회를 불과 30초를 못 버텨서 날려먹었다. 이렇게 기적적인 상황으로 인하여 대한민국 선수들은 당연히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가 되면서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반대로 일본 선수들은 동점골과 함께 종료 휘슬이 울리자마자 멘탈붕괴 상태에 빠져서 그대로 그라운드에 주저 앉았고, 일본의 축구 팬들은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만나기만 하면 맨날 털리기만 했었던 대한민국전에서 1:0으로 이겼으니 사상 첫 본선 진출의 9부 능선을 넘었다고 기뻐하면서 설레발을 쳤지만 귀화선수였던 루이 라모스는 한국전 승리 이후에 같은 동료들이 본선 진출이라도 한 것처럼 너무 좋아하는 모습을 이해할 수가 없었고 강한 불안감을 느꼈다고 인터뷰를 하였다. #
2023년 현재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으로 재직 중인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은 당시의 경기에 미드필더로 출전했었다. 4분 35초부터 인터뷰를 하는 모습이 나온다.#
도하의 기적 사건을 다루는 인터뷰에서 그는 "월드컵 진출에 나의 꿈을 걸었다. 바로 앞에서 월드컵 진출을 봤지만, 손에 쥐려 할 때, 갑자기 눈 앞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그 때보다 슬픈 기억은 없다. 당시 나는 호텔에 들어온 뒤에도 눈물이 그치지 않았다."라는 기억을 전했다. # 그리고 28년 후 자신이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감독이 되어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에서 조 1위로 16강에 진출하는 도하의 기적을 일궈낸다.
그리고 나카야마 마사시도 "경기가 끝나는 순간을 기다리며 카운트다운을 하고 있었다. 꿈이 끝났을 때 처참했다. 사람들이 우는 게 보였다."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참고로 그 당시 일본 대표팀과 한국 대표팀의 숙소가 같은 호텔이었다. 일본 대표팀은 쓸쓸히 객실에서 한국 대표팀의 환호 소리를 들으면서 패배감에 눈물을 흘리며 고배를 마셔야 했고 잔인한 운명을 받아들여야 했던 셈이다.[28]
한일전에서 대한민국을 무너뜨린 일본의 전설적인 스트라이커 미우라 카즈요시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축구의 신이 있다면 따지고 싶었다. 그런 캡틴 츠바사에서나 나올 법한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다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 날의 일이 미국 월드컵 기간 내내 나를 눈물짓게 만들었다."라고 자평했다. 한편 대한민국의 전 국가대표 선수이자 2017년 현재 아주대학교 축구부 감독인 하석주는 J리그에서 뛰던 1999년 12월 31일, 일본의 BS 방송국의 축구 관련 특집 프로그램에 출연해서 "앞으로 축구를 하면서 이런 일은 또 없을 거야."라고 자평했다.
아래의 동영상을 통해서 이라크의 막판 동점 골이 터지는 순간부터 일본 열도가 어떻게 멘붕에 빠졌는지를 2002년 5월 19일 방송된 MBC 스페셜 <한일 축구 애증의 드라마 80년>의 한 장면에서 볼 수 있다.[29]
5분 29초부터 현지팬들의 반응이 나오는데, 여기서터 "그런데, 경기 종료 10초 전!" 이라는 해설이 나온다. 그리고, 5분 48초부터 일본의 현지 반응이 나오는데 순식간에 찬물을 끼얹은 듯이 분위기가 매우 조용해졌다.
'도하의 비극' 이후 일본 TV 도쿄의 반응이다. 동영상 기준 3분 47초에 동점골 장면이 나온다. 5분 25초 이후 경기에서 비긴 후 일본 선수들의 리액션을 보면 갑작스레 일어난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그대로 그라운드 위에 그냥 앉아 버렸다.(8분 57초부터) 일본 축구의 레전드 하시라타니 코이치와 진행자들 역시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면서 눈물을 참고 있는 모습이 역력하다. 게다가, 이 잔인한 경기의 MOM으로 선정된 나카야마 마사시는 전혀 기뻐하지 못하고 얼굴을 아예 못 드는지라 MOM으로 잘했다고 칭찬을 듣는 것이 벌칙게임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오카다 다케시 前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해설을 하는 도중에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하고 옆에 있는 다시마 고조에게 말을 넘기고 너무 슬픈 나머지 결국 눈물까지 보였다.고화질 영상 옆에서 같이 진행하는 아나운서(토모다 미유키)도 목이 메여서 초반부터 아무 말도 꺼내지 못하다가 겨우 "정말 유감입니다." 라는 말을 겨우 꺼냈다. 역시나 두 축구인도 별로 말하고 싶지 않은 것을 억지로 진행하는 분위기였다.
그래도 훗날 오카다 다케시 감독은 1998 FIFA 월드컵 프랑스에서 처음으로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끌었고,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16강 진출에 성공(9위)했다. 그 성과로 도하의 비극의 안타까운 감정을 어느 정도 털어버렸다.
5. 도하의 기적이 가져다 준 대한민국 축구계의 나비 효과
한편, 축구 언론 포포투와 스포츠서울에서는 "도하의 기적이 대한민국 축구의 퇴보를 20년 이상 늦췄고, 일본 축구의 발전을 20년 이상 늦췄다." 라는 기사가 실렸다. # 대한민국 축구계의 역사에 다시는 없을 기적의 성과였던 '도하의 기적'이 갖는 의미는 그저 FIFA 월드컵 연속 본선진출 기록에만 국한되지 않았다.경기 종료 10초 전에 극적으로 일본에서 대한민국으로 본선진출 티켓이 뒤바뀌는 기적을 일으킨 뒤, 겨우겨우 본선 무대로 진출한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은 비록 1승과 16강이라는 염원을 달성하지 못했지만, 월드컵 20위[30] 2무 1패 승점 2점이라는 당시 역대 최고의 성적을 내면서 전세계를 충격에 빠뜨렸다.[31] 물론, 그 대회에서 같은 조에 속했던 스페인, 독일이 모두 8강을 기록했으며, 특히 독일은 당시 피파랭킹 1위였던데다 디펜딩 챔피언을 상대로 3-2로 석패하면서 선전했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더더욱 충격이었다.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은 조별리그에서 강호 스페인에 극적으로 2골을 따라붙어서 무승부 승점 1점을 획득하고 특히 피파랭킹 1위, 디펜딩 챔피언 독일이 후반에 우주방어를 하는 굴욕을 감수할 정도로 맹렬한 선전을 펼쳐서 전반에는 0-3으로 맥없이 끌려갔지만, 후반 시작 후 10여 분 만에 2골을 따라붙고 3-2로 아깝게 석패하면서 독일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32]
당시 독일의 주전 미드필더였던 슈테판 에펜베르크는 후반전의 졸전과 그에 따른 관중들의 야유에 본인의 더러운 성깔을 드러내면서 법규를 시전했다가 즉각 교체와 강제 귀국 조치를 받았고, 이 경기가 졸지에 국가대표팀 은퇴 경기가 되었다. 그리고 경기에 출전했던 위르겐 클린스만[33]도 "5분만 더 있었으면 독일이 역전패를 당할 수도 있었다" 라면서 한숨을 돌렸다.[34]
그 뒤 대한민국은 1994년의 좋은 성과를 보여준 활약을 무기삼아 일본 쪽으로 완전히 기울어져 있었던 2002년 한일 월드컵 유치 경쟁에서 일본보다 더욱 유리한 고지를 점할 수 있었고 결국 1996년에 대한민국과 일본의 공동 개최를 이끌어 낼 수 있었다. 그렇게 열린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은 4강 진출의 신화를 이루어냈다. 그 뒤로 대한민국의 축구가 얼마나 발전했는지에 대해서는 더 이상 설명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실제로 대한민국은 2002년 월드컵 무대에서 스페인에 승부차기로 승리, 대신 독일에게 1골차로 패배하긴 했지만, 2018년에는 독일에 각각 승리를 거두어 이 대회의 복수전에 완벽히 승리했다.[35]
이후 2022 카타르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함으로써 10회 연속 FIFA 월드컵 본선 진출과 16강 진출에 성공하면서 아시아 축구 역사상 유례없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대한민국은 도하 근교의 아라얀에서 아랴얀의 기적을 만들었다.
결국 그 마지막 10초를 남겨놓고 터진 골 하나가 수십 년에 걸쳐서 양국의 축구 역사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 셈이다.
6. 유사 사례
그 밖에 도하의 기적과 비슷한 상황은 아래와 같이 재현되었다.- 유로 2000 지역예선 8조에서 몰타를 제외한 나머지 4팀이 각각 한 경기만을 남겨두고 있었을 때 유고슬라비아, 아일랜드, 크로아티아가 각각 16, 15, 14점으로 1, 2, 3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운명의 마지막 경기에서 유고슬라비아가 크로아티아를 꺾는 데 실패하고, 아일랜드는 마케도니아를 꺾는다면 유로 2000에 직행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 경기가 끝나갈 무렵, 유고슬라비아가 크로아티아와 2:2로 비기고 있었을 때 아일랜드는 마케도니아를 1:0으로 앞서가고 있었다. 아일랜드 팬들은 미리 축포를 준비하고 있었지만 종료 직전 마케도니아에 헤딩 골을 내줘 플레이오프로 밀려났다.[36]
- 유로 2004 16강 조별리그 C조에서 이탈리아가 무재배로 인해 탈락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이미 탈락이 확정된 불가리아를 상대로 1:1로 비기고 있다가 종료 직전 극적인 역전 결승골로 승리했으나 스웨덴과 덴마크가 전광판 시계 멈출 때쯤 2:2 무승부 상황이 되는 바람에 이탈리아는 유로 9등으로 8강 실패했다. 도하의 기적과는 정 반대의 상황이었다. 이탈리아는 자신들을 탈락시킨 두 팀을 스웨덴마크라고 부르면서 깠다.
- 2006 독일 월드컵 아프리카 지역 예선 2라운드 3조에서 마지막 1경기를 남겨 두고 카메룬과 코트디부아르의 승점이 1점 차로 좁혀져 있었다. 운명의 마지막 경기에서 코트디부아르는 수단을 3:1로 신나게 관광 태우고 있는데 카메룬은 이집트에 1:1로 비기고 있어서 탈락할 위기에 몰린다. 후반전 추가시간, 경기가 거의 끝나갈 때쯤 카메룬에게 절호의 페널티 킥 찬스가 온다. 키커는 피에르 워메. 본선 진출의 희망을 위해 슛~했는데... 골포스트를 맞고 튕겨나갔고 그대로 경기 종료. 결국 카메룬은 코트디부아르에 승점 1점이 뒤져 본선 진출권을 놓쳐 버렸다. 그것도 카메룬 홈에서 말이다! 카메룬 관중들은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빡칠 대로 빡쳐서 경기장 출입구를 막는 바람에 선수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그리고 한순간에 역적으로 낙인 찍힌 워메는 경찰의 도움을 받아 이탈리아로 건너갔지만 가족과 친지들은 불안에 떨어야 했다고 한다. 여기에 비하면 로베르토 바조가 당한 것은 장난이었다. 한편, 수단을 3:1로 이기고도 우울해있던 코트디부아르는 카메룬이 이집트와 1:1로 비기면서 처음으로 월드컵에 출전하게 됐는데, 여기서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난 것으로도 유명하다. [37]
참고로, 여기서 실축한 워메는 레프트백, 즉 수비수다.[38] 실축하면 순식간에 혼자서 역적죄를 뒤집어 쓸 상황이라 아무도 차려고 나서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워메가 총대를 멘 셈이다.
- 2008 유로 예선 E조에서 잉글랜드가 히딩크의 러시아에게 원정에서 2:1 패배 하면서 예선탈락에 몰렸다.[39]잉글랜드의 승점은 1경기를 남겨둔채 23점 조2위 러시아의 승점은 2경기를 남겨둔채 21점으로 조3위 더군다나 러시아의 상대는 이미 본선직행이 좌절된 이스라엘, 안도라였다. 잉글랜드의 유로탈락이 사실상 예정되어 있었지만 이스라엘이 러시아를 2:1로 승리하면서 기회는 다시 잉글랜드에게 돌아갔다. 잉글랜드의 마지막 상대는 이미 본선직행이 확정된 크로아티아였고 앞선 크로아티아는 북마케도니아에게 패배하였으며 잉글랜드는 이번예선 홈무패였기에 잉글랜드의 본선진출이 기정사실로 보였다. 잉글랜드가 필요한건 무승부 이상이었다.[40] 그렇게 펼쳐진 최종전 크로아티아전에 전반 7분만에 골키퍼 스콧 카슨이 평범한 중거리슛을 알까기로 실점하며 분위기가 이상하게 흘러거더니 전반 14분 또 실점을 하면서 순식간에 0:2로 스코어가 벌어지며 잉글랜드에게 탈락의 기운이 흐르게 되었다. 같은 시각 러시아는 최약체 안도라에게 1:0앞서 있었다. 후반 11분 램파드가 패널티킥을 넣고 피터 크라우치가 후반 20분 동점골은 집어넣으며 잉글랜드가 기사회생하나 했지만 후반 32분 페트리치에게 원더골을 실점하며 결국 2:3으로 패배해버렸다. 잉글랜드는 안도라가 마지막까지 러시아에게 동점골을 넣어주길 바랬지만 러시아가 안도라에게 1:0승리하면서 결국 잉글랜드는 탑시드를 받은 국가중 유일하게 조3위 탈락 러시아는 조2위 본선직행에 성공했다. 또한 러시아는 기적으로 올라간 대회에 기적의 4강을 이루게 되었다.
- 유로 2008에는 튀르키예가 무려 3번이나 기적을 써내려갔다. 포르트갈,스위스,체코와 함께 A조에 편성된 튀르키예 첫포르투갈전은 2대0완패를 시작으로 스위스전에서도 1대1 무승부로 갈줄알았지만 91분 아르다 투란이 역전골을 넣었다. 남은 체코와의 단두대전에서 체코에게 67분까지 2:0으로 먹힘으로써 튀르키예는 이렇게 탈락하는 줄알았지만 경기종료 15분에 만회골을 넣은 아르다 투란을 시작으로 87분 니하트의 동점골 그리고 89분에 니하트가 역전골을 집어넣었다. 튀르키예는 기적적으로 8강에 진출하였다. 8강 상대는 크로아티아 전후반은 득점없이 연장전으로 갔다. 그러던 119분 크로아티아의 이반 클라스니치가 골키퍼의 실수를 틈타 골을 넣었다. 이대로 튀르키예의 돌풍은 여기까지인줄 알았지만 경기종료 7초전 골키퍼의 롱킥을 받은 션튀리크가 기적적인 동점골을 넣았다. 결국 승부차기로 간 양팀은 크로아티아가 모드리치, 라키티치,페트리치의 실축한대 반해 튀르키예는 전부 성공하며 기적적으로 4강에 진출하였다.[41]
- 2010 남아공 월드컵 북중미 지역 최종 예선에서 멕시코와 미국이 이미 본선을 확정짓고 코스타리카와 온두라스가 남은 1장의 본선 직행권을 놓고 싸우는 상황이었다. 온두라스는 이미 탈락이 확정된 엘살바도르를 1:0으로 이겨 놓고 미국과 코스타리카의 경기 결과를 지켜보았다. 코스타리카가 전반전을 2:0으로 앞선 상태에서 후반전에 미국이 뒤늦게 만회골을 성공시키더니 경기 종료 직전 극적인 동점골을 터뜨렸다. 그렇게 해서 코스타리카는 대륙간 플레이오프로 밀려나
서 떨어지고[42] 온두라스가 본선에 직행했다.
- 2010 남아공 월드컵 남미 지역 예선에서 브라질, 칠레, 파라과이는 이미 본선 진출을 확정지었고 우루과이, 아르헨티나, 에콰도르가 남은 1장의 본선 직행권을 놓고 싸우는 상황이었다. 우루과이는 아르헨티나와의 맞대결이, 에콰도르는 이미 본선 진출이 확정된 칠레와의 대결이 기다리고 있었다. 우루과이는 아르헨티나에게 0-1로 발려서 자력 진출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우루과이가 아르헨티나에게 0-1로 패한 지 정확히 2시간 뒤에 칠레와 에콰도르의 경기가 예정되어 있었고, 이 경기에서 에콰도르가 칠레를 이기면 우루과이는 6등 확정으로 지역 예선에서 탈락하는 상황이었다. 자포자기하고 있었는데 칠레가 에콰도르를 1-0으로 이겨버렸다. 그렇게 아르헨티나가 본선에 마지막으로 직행하고 우루과이는 플레이오프로 향했다. 칠레가 에콰도르를 이기는 바람에 우루과이를 살렸다. 칠레는 우루과이를 플레이오프로 밀어 넣어 줬고, 에콰도르는 그렇게 떨어졌다. 참고로 우루과이는 이때 코스타리카와 플레이오프를 치러 본선에 진출해 준결승까지 진출했는데, 이것이 또 하나의 기록을 만들어냈다. 역대 월드컵 역사상 최다 경기를 치른 팀. (한 대회에 27경기)[43]
- 도하의 기적이 일어났던 대회와 같은 1994년 대회의 예선전에서 비슷한 상황이 또 있었다. 유럽 예선 6조에서 오스트리아, 이스라엘은 각각 세 경기를, 나머지 4개 팀은 각각 두 경기씩을 남겨두고 있었다. 1위였던 프랑스는 그때까지 1승도 못 거둔 이스라엘을 꺾으면 자력으로 본선에 갈 수 있었고, 스웨덴에 이어 3위를 기록하고 있던 불가리아는 아직 본선 진출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었다. 불가리아의 입장에서는 고맙게도, 불가리아가 오스트리아를 4-1로 대파한 날, 프랑스가 홈에서 꼴찌 이스라엘에 2-3으로 어이없는 역전패를 당해 2위로 밀려나며 불가리아에도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44]. 운명의 마지막 경기에서 불가리아는 프랑스를 이겨야 본선에 간신히 올라갈 수 있었는데, 1:1 상황에서 경기가 후반 추가시간으로 돌입할 때 쯤 다비드 지놀라가 엉성한 크로스를 차는 실수로 인해 에밀 코스타디노프가 득점으로 연결해 간신히 올라갈 수 있었다. 참고로 이스라엘은 프랑스와의 원정 경기가 그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유일하게 이긴 경기였다. 이스라엘은 이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 조 꼴찌를 기록했으며 이때 이스라엘의 총 전적은 10전 1승 3무 6패였다. 이 사건으로 프랑스는 1990 FIFA 월드컵 이탈리아에 이어 2연속으로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하며 다시 한 번 고배를 마신다. 프랑스의 1990, 1994년 월드컵 멤버들은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우승 멤버였던 지네딘 지단, 티에리 앙리, 다비드 트레제게 같은 황금세대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화려한 멤버들이 정말 많았기애 본선 진출에 실패한 이 불행한 세대를 "프랑스 축구의 저주받은 세대"라고도 부른다. 이 세대의 멤버는 에릭 칸토나, 장 피에르 파팽[45], 폴 르갱[46]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디디에 데샹, 마르셀 드사이, 에마뉘엘 프티, 로랑 블랑, 유리 조르카에프같이 4년 뒤 조국에 우승을 바친 선수들도 이 당시 주전 멤버들이었다. 특히나 핵심선수이자, 그 운명의 실수를 저지른 다비드 지놀라는 이 경기가 국가대표 마지막 A매치가 되었다. 1967년생이고 20대 중반이 되면서 전성기를 보냈어야했던 선수가 이른 은퇴를 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선발출장도 아닌, 교체 출전이었다. 그리고 불가리아는 이 대회에서 무려 4강에 진출한다.
- 위의 불가리아의 기적과 비슷한 일이 2010 FIFA 월드컵 남아프리카공화국 아프리카 지역 최종 예선에서 재현되었다. B조에서는 나이지리아와 튀니지가 한 조에 묶여 있어 그야말로 '죽음의 조'였는데, 4개 팀이 각각 두 경기씩만을 남겨두고 있을 때 튀니지는 2승 2무인 반면 나이지리아는 첫 경기부터 모잠비크와 무득점으로 비기는 바람에 1승 3무가 된 데다가 이미 두 팀이 서로의 두 경기를 모두 끝낸 상황이라 나이지리아로서는 지난번 앙골라의 악몽이 재현될 조짐이 엿보였다. 5경기째, 튀니지가 케냐를 상대로 홈에서 경기 시작하자마자 골을 넣어 1:0으로 승리했을 때 나이지리아는 홈에서 모잠비크와 90분이 넘도록 무득점으로 비기고 있었다. 이대로 탈락인가 하고 낙담하고 있을 때, 이탈리아 세리에A의 인테르 소속 공격수 빅토르 오빈나가 종료 직전 천금 같은 결승골을 터뜨려 팀을 위기에서 구원한다. 이 결승골 하나로, 본선 진출을 확신하던 튀니지의 팬들에게 엿을 택배로 보냈다. 일단 위기에서 빠져나오기는 했지만 여전히 본선 행에 빨간 불이 켜져 있던 나이지리아였다. 하지만 모잠비크전의 짜릿한 승리가 나비 효과가 되었는지, 튀니지는 마지막 경기인 모잠비크 원정에서 이기기만 하면 100% 본선인데 그만 0:1로 덜미를 잡혔다. 반면에 나이지리아는 케냐 원정에서 전반전을 0:1로 졌지만 후반전 역전골을 뽑아내며 3:2로 승리했다. 이로써 본선 진출권은 나이지리아에게 돌아갔다. 나이지리아로서는 한 때 자신들을 탈락 위기에 몰아넣은 모잠비크가 마지막 경기에서는 참 고마웠을 것이다. 이렇게 나이지리아는 극적으로 월드컵 본선 무대를 다시 밟을 수 있게 되었고, 튀니지는 4연속 월드컵 진출의 꿈이 무산되고 말았다. 그 나이지리아는 본선에서 대한민국과 일전을 벌여 2-2로 무승부를 기록했다. 그러나 그리스전의 결과로 인해 대한민국(2:0 승)이 16강에 진출한 반면 나이지리아(1:2 패)는 탈락했다.
- 2009년 남아프리카 공화국 컨페더레이션스컵 8강 B조에서 2007년 골드컵 우승팀 미국은 2006년 월드컵 우승팀 이탈리아, 2007년 코파 아메리카 우승팀 브라질, 2008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우승팀 이집트와 함께 B조에 편성되었다. 첫 경기부터 이탈리아를 상대로 1-3 패배를 당하더니 두 번째 경기에서 브라질에 0-3으로 연패했다. 이대로 광탈인가 하고 낙담하고 있는데, 아니 이게 웬일인가? 이탈리아가 너무 쉽게 생각하던 이집트에 0-1로 덜미를 잡히는 이변을 연출하면서 미국에게 실낱 같은 한 줄기 희망의 빛이 비치기 시작했다. 드디어 6월 21일, 운명의 마지막 경기. 미국이 4강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이집트를 크게 이기고 브라질도 이탈리아를 크게 이겨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이집트는 브라질에게 3실점을 안겨주고 이탈리아도 꺾은 팀이며, 이탈리아는 월드컵 우승에 빛나는 강팀이 아니던가. 하지만 행운의 여신은 미국의 손을 들어주었다. 미국의 적극적인 공세로 이집트의 수비진이 위태로워져 3-0 대승을 거뒀고, 브라질과 대등한 경기를 펼칠 것으로 보였던 이탈리아도 반드시 브라질을 이겨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에 제대로 경기를 펼치지 못해 0-3으로 참패했다. 그리하여 브라질만 3승이고 나머지 3팀은 똑같이 1승 2패가 됐는데, 일단 골 득실이 -3이 된 이집트는 제쳐두고 똑같이 골 득실이 -2가 된 미국과 이탈리아 중에서 득점이 더 많은 미국이 4강에 가는 기적을 이루어낸 것이다. 게다가 그 미국은 오히려 3전 전승에 8득점 무실점으로 올라온 유로 챔피언 스페인을 2-0으로 털었다. 비록 결승에서는 브라질에 2골을 몰아쳐 기선 제압을 하고도 2-3으로 아깝게 졌지만 말이다.
- 2010년 남아공 월드컵 32강 조별리그 C조 마지막 경기에서 슬로베니아는 1승 1무, 잉글랜드와 미국은 2무, 알제리는 1무 1패인 상황이었다. 슬로베니아는 잉글랜드와, 미국은 알제리와 마지막 경기를 남겨두고 있었다. 잉글랜드에게 선취골을 내준 슬로베니아는 계속 만회골을 노렸으나 잉글랜드가 철저하게 골문을 잠궜다. 미국과 알제리가 여전히 0:0 상황이어서 0:1로 져도 잉글랜드가 조 1위, 슬로베니아가 조 2위로 16강에 갈 가능성이 높아지자 슬로베니아도 수비만 하며 잉글랜드가 추가 골을 넣지 못하게 했다. 결국 슬로베니아는 그대로 0:1로 졌고, 두 팀의 경기가 끝났을 때도 미국과 알제리는 0:0이었다. 그러나 잉글랜드와 슬로베니아의 경기가 끝난 지 단 몇 십 초 후, 미국의 랜던 도노반이 알제리의 골문을 가르며 미국이 1승 2무를 기록해 다득점으로 잉글랜드를 누르고 조 1위로 진출하게 된다. 슬로베니아 선수들은 경기장에서 옷을 서로 바꿔 입을 때는 싱글벙글 했으나 라커룸에서 자신들이 월드컵 최종 18위로 16강 실패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 AFC 챔피언스 리그 2010 시즌에서도 유사 사례가 있다. 동아시아 G조에서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감바 오사카에 뒤져 있는 채로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있었는데, 수원의 입장에서는 조 1위를 차지하려면 싱가포르 암드 포스 F.C.를 이기고 허난 젠예가 감바의 발목을 잡아주어야 하는 상황이었다. 수원은 SAFFC를 상대로 6:2 대승을 거두었고 허난과 감바의 경기를 지켜봐야 했다. 감바가 전반 39분 터뜨린 우사미 다카시의 선제골을 잘 지켜 조 1위를 차지할 분위기였는데, 기적이 일어났다. 후반 45분이 다 끝나고 추가 시간이 주어지려고 할 때 허난의 수비형 미드필더인 송태림이 동점골을 터뜨렸다. 감바의 입장에서 보면 고춧가루 골이었다. 그리고 추가 시간이 조금 주어지다가 바로 경기가 종료되면서 수원은 감바에 빼앗긴 조 1위 자리를 탈환하였다. 그리고 K리그에서도 활동한 적이 있는 송태림은 순식간에 기적의 영웅으로 대접받았다. 만약 송태림의 극적인 동점골이 없었다면 K리그의 동아시아 올킬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 2014년 브라질 월드컵 북중미 최종 예선은 3위까지는 본선 직행, 4위에게는 대륙 간 플레이오프 진출권이 주어졌는데, 마지막 경기를 남겨둔 상황에서 플레이오프 진출권을 4위 멕시코(2승 5무 2패, 승점 11, 골 득실 -1)와 5위 파나마(1승 5무 3패, 승점 8, 골 득실 -3)가 다투는 상황이었다. 멕시코가 비기기만 하면 플레이오프에 진출할 수 있었지만 마지막 경기가 파나마는 홈 경기, 멕시코는 원정 경기였고 다득점은 파나마가 2골 앞서고 있었다. 무엇보다 멕시코 경기력이 최악을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파나마가 이기고 멕시코가 지면서 순위가 바뀔 가능성도 높았다. 파나마 vs 미국, 코스타리카 vs 멕시코 경기는 동시에 시작되었다. 전반 18분 파나마가 선제골을 터뜨리며 1:0으로 앞서나갔고 멕시코가 전반 23분 코스타리카에게 실점하며 순위가 뒤집힌다.(4위 파나마, 5위 멕시코) 멕시코는 전반 29분 만회골을 터뜨리며 동점으로 만들었고 순위를 되돌린다.(4위 멕시코, 5위 파나마) 멕시코는 후반 19분 다시 실점하며 리드를 내줬으나 같은 시각 파나마도 실점하며 1:1로 동점이 되었다.(4위 멕시코, 5위 파나마) 그러나 파나마가 후반 38분 역전골을 터뜨리며 승기를 잡았고 멕시코는 동점으로 만들지 못한 채 패하고 만다.(4위 파나마, 5위 멕시코) 이대로 끝나면 멕시코는 1990년 이후 처음으로 월드컵에 못 갈 위기 상황이었다. 하지만 미국이 추가 시간인 92분, 93분에 동점골에 역전골까지 연달아 터뜨리는 바람에 파나마도 패하고 말았다. 결국 최종 순위는 4위 멕시코(2승 5무 3패, 승점 11), 5위 파나마(1승 5무 4패, 승점 8)가 되었다. 파나마 경기 결과를 전달받은 멕시코는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으나 멕시코 경기 결과를 지켜보며 플레이오프 진출을 기정사실화 했던 파나마 홈 관중들은 경기가 뒤집히자 순간적인 상황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며 이성을 잃고 폭동을 일으켰다. 기사회생한 멕시코는 뉴질랜드와의 플레이오프에서 완승을 거두며 월드컵 출전권을 따냈다.
- 2013-2014 UEFA 챔피언스리그 32강 F조는 5라운드 종료 시점에 1위 아스날(4승 1패, 승점 12, 골득실 +5), 2위 도르트문트(3승 2패, 승점 9, 골득실 +4), 3위 나폴리(3승 2패, 승점 9, 골득실-1)로 세 팀 모두 16강 진출 가능성이 열려있었다.
5패로 동네북이 된 마르세유는 잠시 잊고 있자.마지막 경기는 아스날 vs 나폴리, 도르트문트 vs 마르세유였는데 이 중 가장 불리했던 건 상대 전적에서 열세였던 나폴리였다. 나폴리가 자력 진출을 하려면 아스날을 상대로 3골 차 승리를 해야 했다. 13-14시즌 외질의 영입과 함께 무시무시한 위력을 보이던 아스날을 상대로 3골 차 승리는 쉽지 않았기 때문에 나폴리는 마르세유의 고춧가루가 작렬하여 도르트문트가 비기거나 지는 상황이 벌어지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전반 4분 도르트문트는 레반도프스키의 선제골로 1:0으로 앞서나갔다.(1위 아스날, 2위 도르트문트, 3위 나폴리) 하지만 전반 14분 마르세유는 동점골을 터뜨렸다. 전반 34분 파예가 퇴장당하며 마르세유는 수적 열세에 놓이나 도르트문트의 맹공격을 잘 버텨냈다.(1위 아스날, 2위 도르트문트, 3위 나폴리) 후반 18분 이과인의 골이 터지며 나폴리는 1:0으로 앞서나갔고 곧이어 후반 21분 아스날의 아르테타가 퇴장당하며 나폴리는 광란의 도가니가 된다.(1위 아스날, 2위 나폴리, 3위 도르트문트) 그러나 나폴리는 16강에 올라갈 수 없었다. 후반 42분 케빈 그로스크로이츠의 골이 터지며 도르트문트가 2:1로 앞서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1위 도르트문트, 2위 아스날, 3위 나폴리) 도르트문트의 역전골 소식에 나폴리 팬들은 일제히 멘붕. 도르트문트가 앞서나가자 경기 막판 다급해진 나폴리는 맹공을 퍼부었고 후반 48분 카예혼이 추가점을 넣었으나 한 골을 더 넣을 시간이 부족했고48분이 모자라.결국 경기는 2:0으로 종료됐다. 경기 종료 후 도르트문트 경기 결과만 기다리고 있던 나폴리 선수들은 후반 42분 추가 골을 지켜낸 도르트문트의 승리를 전해 듣고 망연자실했고 선제골을 넣은 이과인은 눈물을 쏟아내고 만다. 최종 순위는 1위 도르트문트(승점 12, 골득실 +5), 2위 아스날(승점 12, 골득실 +3), 3위 나폴리(승점 12, 골득실 +1)로 결정되었고 잔인한 경우의 수 놀음의 희생양이 된 나폴리는 조별 예선 시스템이 시작된 후 승점 12점을 얻고도 탈락을 면치 못한 최초의 팀이 되고 말았다.덤으로 마르세유는 프랑스 클럽 최초로 승점 0을 달성했다.한편 G조의 제니트는 승점이 나폴리의 절반인 6점에 불과한데도 16강에 진출했다.
- 신태용호/2017년/EAFF E-1 풋볼 챔피언십/일본전 2017 동아시안컵 도쿄에서 알제리 쇼크 감독의 일본이 홈에서 마지막 경기 한국한테 무승부만 해도 우승이었고, 전반초반 오프사이드 오심으로 한국 수비가 막다가 일본이 PK를 얻고 1:0으로 앞섰으나...결국 전반에 김신욱 2골과 정우영 프리킥 1골로 3:1로 전반을 마치고..후반 염기훈의 프리킥 골로 한국이 4:1로 승리하여, 리피[47]의 중국까지 제치고 우승하였다.(2017 도쿄대첩)
-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아시아 예선에선 슈틸리케로 인해서 중국과 카타르에게 연속으로 패하여 탈락위기에 처한 대한민국이 신태용 감독으로 바뀌고 강팀 이란과 우즈베키스탄에게 힘겹게 각각 무승부 승점 1점씩을 얻었지만, 그때 시리아와 이란이 무승부를 하면서 간신히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다. 사실상 이란이 구해준 격.
- 2018년 러시아 월드컵 32강 F조 멕시코는 마지막 3경기 때 스웨덴에 0:3으로 완패했다. 당시 멕시코는 골득실이 1 이상이 되어야 자력으로 16강 진출을 노릴 수 있었는데, 3골이나 내준 것. 경쟁팀인 독일이 한국에게 1점이라도 내면서 이긴다면 같은 2승 1패에 골득실차로 3위로 밀려나게 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경기 종료 직전에 멕시코 팀과 관중들은 매우 절망적인 상태였는데, 독일과 한국 경기가 열린 카잔에서 대이변이 일어난 덕분에 멕시코가 2위로 16강에 올라가게 되었다. 이로 인해 멕시코 현지에서는 멕시코 주재 한국 대사관에 각종 선물과 감사 인사가 쏟아짐은 물론 현지에 한국인들과 기쁨을 나누는 등 아주 광란의 도가니가 벌어졌다. 본 문서의 "구국의 영웅 움란 자파르" 문단에서 한국이 한 것과 매우 비슷한 일이 멕시코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리고 멕시코는 또 16강에서 브라질한테 패하면서 16강 징크스를 깨지 못하였다.
- 2019년 아프리카 네이션스컵 최종예선 K조 마지막 경기에서도 도하의 기적이 일어났다. 최종전을 앞둔 상황에서 1위는 기니비사우, 2위는 나미비아, 3위는 모잠비크였고, 탈락이 확정된 4위는 잠비아였다. 기니비사우는 승점 8점, 나미비아 역시 승점 8점이였으나 승자승에 밀려 2위였고, 모잠비크는 7점이였다. 세 국가 모두 본선 진출이 가능한 상황에서 일단 무조건 이기는게 최선이였고, 기니비사우와 나미비아는 무승부만 거둬도 되는 상황이고 모잠비크는 무조건 이겨야하는 상황이였다. 그렇게 시작된 최종전에서 나미비아는 탈락이 확정된 잠비아에게 4-1로 무기력한 완패를 당했고, 나미비아 선수들은 그라운드 밖으로 나와 기니-비사우와 모잠비크의 경기를 보고 있었다. 1-1로 팽팽하던 경기는 90분에 모잠비크가 역전골을 넣으며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이에 모잠비크는 축제분위기가 되었지만, 나미비아는 본선 탈락을 직감해 엎드려 우는 선수도 있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역전골 1분 뒤 바로 기니비사우의 동점골이 터졌고, 그대로 경기가 끝나버렸다. 1분동안 엄청난 굴곡의 롤러코스터와 같은 경기가 펼쳐졌고, 결국 기니비사우와 나미비아가 본선에 올라갔다. 모잠비크는 결국 2-2 무승부로 인해 나미비아와 승점은 같고 골득실은 앞섰으나 승자승 원칙에서 밀리며[48] 통한의 눈물을 흘려야 했다.
- 2019년 K리그1에서 이와 같은 사례가 있었다. 당시 1위인 울산 현대는 2위인 전북 현대와의 승점차가 3점차라, 울산은 포항 스틸러스와의 마지막 경기에서 비기기만 하더라도 우승이 확정되는 상황이었고 전북은 무조건 이기고 봐야 했던 상황이었다. 전북이 최종전에서 강원 FC를 상대로 1:0으로 승리한 반면, 울산은 포항을 상대로 1:4로 패한 후 다득점 원칙에서 밀리며 우승 타이틀을 전북에 내줄 수 밖에 없었다.
-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32강 H조에서 2차전까지 치른 결과 포르투갈은 16강 진출 확정, 가나는 우루과이를 이기면 자력 진출 가능, 대한민국과 우루과이는 각각 포르투갈과 가나를 이긴 뒤 서로를 골득실이나 다득점으로 앞서야 진출이 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대한민국과 포르투갈이 1:1로 비기고 있었던 반면 우루과이는 가나를 2:0으로 앞서면서 우루과이가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후반 추가시간에 대한민국이 역전골을 넣으며 우루과이를 다득점으로 제치고 조 2위로 올라섰고 다급해진 우루과이는 추가 공격을 퍼부었으나 12년 전 루이스 수아레스의 신의 손 사건으로 피해를 본 가나는 우루과이를 탈락시키겠다는 의지로 끝까지 추가 실점을 허용하지 않으면서 대한민국은 11%의 확률을 뚫고 16강에 진출했다.
- 클린스만호/2023 AFC 아시안컵 카타르/사우디아라비아전에서 한국이 사우디한테 1-0으로 뒤진채 후반 종료 1분 전인 90+9분,[49] 왼쪽에서 김태환이 높이 올린 크로스를 왼쪽에서의 설영우가 헤딩으로 연결했고, 이것이 골키퍼와 수비 1명을 모두 넘겨 버리는 행운이 발생했는데, 조규성이 이를 가차없이 골문에 머리로 꽂아버리며 기적의 동점 극장골을 만들어서 승부차기까지 가서 승리했다.
7. 일본 축구의 무덤, 도하와 이라크
-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도하의 기적으로부터 13년 뒤, 아시안 게임 축구 종목에서 일본과 북한은 같은 조가 되었는데, 그 두 팀은 마지막에 경기를 치를 예정이었고, 공교롭게도 13년 전 대한민국 선수들이 북한전을 끝내고 울다가 웃은 바로 그 경기장에서 경기를 치르게 되었다.
그 당시 상황은 이미 2승 1패로 조 2위를 거둔 팀들이 일본보다 더 골 득실이 높았기 때문에 북한에게 지면 그냥 광탈이지만 비기기만 해도 8강에 갈 수 있었으나...... 선제골을 넣고도 1-2로 역전패하는 바람에 북한이 8강에 직행했고, 일본은 조 2위 팀 중 상위 두 팀에게 주어지는 진출권도 받지 못한 채 그냥 PO광탈WER! 3위 결정전에서 진 것도 아니고 아예 그냥 8강에도 못 간 신세.
이라크에 발목 잡히고 북한에 덜미 잡히고... 정말 일본에게는 악연의 땅임에 틀림없다. 게다가 여자부에서도 일본은 결승에서 북한을 만나서 "금메달도 딸 겸, 남자부를 광탈시킨 북한에게 우리라도 복수해주자"는 각오로 임했으나 승부차기로 무릎을 꿇는 바람에 금메달을 놓쳤다. 당시 대한민국도 준결승에서 이라크에게 지고 3위 결정전에서 이란에게 동메달을 내줬다.
- 2012 U-19 아시아 청소년 대회
그렇지만 이라크와의 악연은 여전한지, 2012년 열린 (2013 U-20 청소년 월드컵 예선이기도 한) U-19 아시아 청소년 대회에서 일본은 19년 전과 똑같이 이라크에게 발목 잡히며 떨어졌다. 직전의 두 대회에서 자신들을 좌절시킨 대한민국을 피했더니 이번에는 이라크한테 2:1로 패배하면서 짐을 쌌고, 대한민국은 이란을 4:1로 이기면서 올라갔으니 이쯤 되면 일본 입장에서는 정말 복장 터질 일이다. 참고로 우리가 잡은 이란은 일본을 2:0으로 뭉개버렸다.
-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아시아 최종예선 B조
2018년 러시아 월드컵 지역 최종예선에서, 한국은 A조에 편성되었지만 일본은 이라크와 함께 B조에 편성되면서 또다시 이라크가 일본의 발목을 잡을 것인가 기대를 모았다. 그리고 이어진 예선전에서 일본은 홈에서 열린 경기에서는 이라크에 극장골을 넣으며 간신히 2-1로 승리했지만 원정경기에서는 1-1로 무승부를 거두며, 여전히 이라크를 상대로 상당히 고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아시아 최종예선 B조
그리고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예선에서도 1994 최종예선 진출 팀 중 북한을 제외한 대한민국, 일본, 이란,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가 최종예선으로 진출했다. 하지만 4회 연속으로 대한민국과 일본이 다른 조에 편성되었고 이란과 이라크는 한국과 같은 조로 들어가 일본은 이라크를 피하게 되었고 대신 사우디아라비아를 만나게 되었다. 그리고 최종예선에서 일본의 홈경기에서 벌어진 오만과의 1차전을 패배한 것부터 시작하여 불안한 조짐을 보였고 도하에서의 중국과의 2차전은 졸전 끝에 1-0으로 겨우 승리했지만 사우디아라비아와의 원정 3차전에서 또 다시 패배하면서 월드컵 진출이 불투명해졌다. 그러나 이후 6연승을 달렸고 특히 이 과정에서 홈에서 사우디를 상대로 복수에 성공하고 또 홈, 원정에서 경쟁권에 위치한 호주를 두 번 잡아내면서 진출을 확정짓는데 성공했다.
- 2023 AFC 아시안컵 카타르
- 조별리그 D조 2차전 이라크 VS 일본 - 도하의 비극 당시에는 패배는 아니고 비기기라도 했지만, 이번에는 아예 이라크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 8강전 이란 VS 일본 - 위의 이라크전과 같은 경기장에서 치러졌는데, 졸전 끝에 1:2로 역전패하면서 대회 전까지만 해도 우승 후보 0순위라 꼽히던 모리야스 재팬은 대회 최강의 웃음후보로 전락하며 8강에서 짐을 싸야 했다.
7.1. 비극의 땅에서 축복의 땅으로 바뀌다
-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2011년 아시안컵의 개최국은 카타르. 일본은 B조에 편성되었으며, 1차전은 요르단, 2차전은 시리아, 3차전은 사우디아라비아였다. 또 다시 안 좋은 추억으로 남을 줄 알았으나 도하에서 열린 요르단과의 경기에서 1:0으로 뒤쳐지고 있던 상황에서 후반 추가 시간에 수비수 요시다가 극적인 헤딩 동점골을 넣었다. 그래서 샤다라빠 카툰에서는 이 동점골 넣는 장면을 도하의 기적 당시 일본 분위기를 팀만 바꾸고 패러디했다. 일본은 호주와의 결승전에서 리 타다나리(이충성)가 연장 결승골을 넣으며 우승을 차지했다. 일본 대표가 처음으로 도하에서 성공을 거둔 사례다.
- 2016 AFC U-23 챔피언십 카타르
2016년 AFC U-23 챔피언십 카타르에서는 이라크와의 4강전, 카타르 도하에서 후반전 연장 시간 종료를 바로 앞두고 일본이 골을 넣어 이라크와의 준결승전을 2대 1로 승리해서 23년만에 도하의 비극을 갚아 올림픽에 진출했고, 한국과의 결승전 후반 초반까지 한국에 2:0으로 밀려서 혹시나 한국이 어렵지 않게 우승컵을 가져가서 도하의 비극이 되살아나나 싶었지만 분위기가 후반 중반에 갑자기 일본 쪽으로 넘어가기 시작해서 3골을 넣어 우승에 차지했다. 일본 대표가 도하에서 성공을 거둔 사례 2.
- 2022 FIFA 월드컵 카타르 32강 E조
일본 대표가 도하에서 성공을 거둔 사례 3. 어찌저찌 최종예선에서 본선 진출에 성공했지만 도하에서 열린 조 추첨식 때 스페인과 독일이 들어가 있는 조에 배정되면서 일본은 16강 토너먼트 진출 전망이 매우 어두워졌다. 일본 현지에서는 "차라리 강팀과 싸워보니 미리 보는 8강전이다"라는 자위적 반응도 보이고, "죽음의 조는 상대가 비등비등한 강팀일 때나 죽음의 조지, 이건 그냥 일본에게는 절망의 조 아니냐"라는 소리도 현지 스포츠신문에 실릴 정도다.[50] 그런데 도하에서 열린 독일과의 1차전에서 일본이 독일에게 역전승을 거뒀다. 일본판 도하의 기적과 카잔의 기적이 발생한 셈이다. 그 뒤 아라얀에서 열린 2차전 코스타리카전에서 패배해 16강 진출이 어두워졌지만, 도하에서 열린 스페인과의 3차전에서 또 다시 역전승을 거둬 조 1위로 16강 진출에 성공하게 되었다. 그렇게 비극의 땅이었던 도하가 마침내 축복의 땅으로 바뀌게 되는 줄 알았으나... 애석하게도 고작 1년 후 열린 아시안컵, 하필이면 도하 근교의 알라이얀에서 이란에게 1:2로 역전패하여 우승에 실패하였고 8강에서 조기에 짐을 싸게 되면서 다시 비극의 땅으로 돌아가 버리고 말았다.
위키백과에서는 '도하의 기적'이라고 하면 한국 입장에 편중된다는 지적을 받고, '도하의 비극'이라고 하면 일본 입장에 편중된다는 지적을 받기 때문에 일부 언어판에서는 경기 자체를 가리키는 명칭인 '1993년 월드컵 일본 대 이라크'를 표제어로 채택한다.
- 도하의 기적: 한국어판, 페르시아어판
- 도하의 비극: 일본어판, 체코어판, 스페인어판, 포르투갈어판[51]
- 일본 대 이라크: 독일어판, 영어판, 프랑스어판
- 일본에서는 도하의 비극 경기에서 활약한 루이 라모스를 비롯한 출전 멤버들과 한스 오프트 감독이 17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고 그 당시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의 상황과 뒷이야기가 다큐멘터리로 방영되었다.
- 축구 만화인 우리들의 필드는 마침 1992년부터 연재가 시작되었던 만큼, 작중에서도 1993년 J리그 발족과 함께 도하의 비극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다. 같은 축구만화인 J드림에서는 이 도하의 비극을 다루고 있다. 주인공의 활약으로 한국에게 4:3으로 승리[52] 하지만 바로 이라크와 비기면서 한국이 월드컵 진출. 작중 등장인물인 이부 겐스케의 모티브는 당연히 카즈이다.
- 캡틴 츠바사 월드 유스 편의 프롤로그에서도 이 도하의 비극이 다뤄졌고, 1994년에 나온 애니판인 캡틴 츠바사 J의 1화 프롤로그에서도 프랑스 월드컵 최종 예선 마지막 경기가 일본과 이라크와의 경기였는데, 여기에서는 2:2 동점인 상황에 추가시간 종료를 앞두고 휴가 코지로의 회심의 타이거 샷이 이라크 골키퍼의 손을 맞고 굴절되어 크로스 바를 맞고 튕겨 나오나, 그 세컨 볼을 오오조라 츠바사가 드라이브 슛으로 극적인 대역전 결승골을 넣어서 일본이 월드컵에 진출한다는 프롤로그로 처리했다.
- 애니메이션 골FH(국내명 : 태풍의 그라운드)의 맨 처음 장면이 바로 이 도하의 비극 실점 장면을 TV로 보는 모습이다.
아오야마 고쇼의 추리 만화 명탐정 코난에서도 도하의 기적을 언급하면서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본선 진출을 기뻐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자타공인 축구광으로 유명하신 에도가와 코난이 APTX4869 약을 먹고 어린애로 변하기 전의 1993년 중학생 시절, 도하의 비극이 일어난 충격적인 사태를 보고 너무나도 분해서 일주일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잤다고 한다.[53][54] 이때 소년탐정단의 반응은, "너 그때 3살이잖아? 그렇게 어릴 때부터 축구를 좋아했어?"라고 되묻자 당황하면서 얼버무린다. 당연하지만, 4년 전 1993년의 코난은 중학생이었기 때문에 도하의 비극을 똑똑히 기억하는 것이다. 여기서 작중 시대 배경으로 "뭐... 난 처음부터 프랑스로 갈 것이라고 확신했었지만..." 대사가 나오는 것을 보면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이 1998년 프랑스 월드컵부터 처음으로 예선통과를 달성한 조호르바루의 환희라고 판단할 수 있다.
- 풀 메탈 패닉! 애니메이션에서도 남주인공 사가라 소스케가 여주인공인 치도리 카나메를 미행할 때, 이 사건이 표지에 실린 스포츠 신문으로 얼굴을 가리면서 이동하는 장면이 있다. 단, 이는 사가라가 어설프게 미행한다는 걸 보여 주기 위한 장면으로 애초에 작중 시점이 도하의 비극에서 5년은 훌쩍 지난 상황이어서 금방 들킨 것. 치도리 왈 "도하의 비극? 언제적 신문이야, 이거?"
- 우주 형제의 주인공 형제 중 형인 난바 뭇타가 이 경기 날에 태어났다. 작중에서 움란 자파르의 동점골이 터지며 전 일본인의 한탄과 함께 자신이 태어났다며, "도하의 비극 세대인 내가 운이 좋을 리가 없잖아..."며 자조하는 덕분에 우주 형제에서 자주 언급된다.
- 개구리 중사 케로로에서도 언급되는 등, 여러모로 일본 축구팬들에겐 지울 수 없는 기억이다.
- 2007년 일본 영화 <버블로 GO! 타임머신은 드럼방식>에서 주인공 타나카 마유미(히로스에 료코 분)가 타임머신을 타고 1990년으로 돌아가게 되는데, 디스코장에서 축구선수 라모스 루이를 우연히 만나게 된다. 라모스를 알아본 마유미는 먼 훗날 도하에서 실점을 조심하라고 충고한다. 라모스 루이는 일본으로 귀화한 브라질 태생의 축구선수였고 도하의 비극의 그 경기에서 직접 출전했던 선수였다.
- 그 뒤 2013년 6월 11일(한국시간) 카타르 도하에서 열린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지역예선(아시아) 이라크와의 최종예선 8차전에서 후반 44분 오카자키 신지의 결승골로 1:0으로 꺾으면서 20년 동안 있었던 이라크와의 마음고생을 시원하게 털어냈다. 하지만 2015년 AFC 아시안컵 호주 시드니에서 벌어진 UAE와의 8강전에서 승부차기 패배로 눈물을 흘렸다.
- 만약 UEFA 유러피언 챔피언십[55]처럼 승자승 원칙 우선으로 진행됐다면 일본과 대한민국의 운명이 바뀌었을지도 모른다. 이 경우엔 일본이 이미 한국을 1:0으로 이겼기 때문에 일본이 져야 한국이 진출할 수 있다.
- 이 사건은 22년 후 다른 구기 종목 대회에서 재현되었다.
- FIFA 시리즈의 2006 FIFA 월드컵 독일에서 도전 과제 중 이 당시의 한국과 북한의 경기가 나오며 여기서는 단순히 남북전이라는 과제명으로 나온다.
- 일본 대 이라크전 하프타임 중 사담 후세인 대통령의 아들 우다이 후세인이 예약없이 찾아와서 이라크 대표팀 선수들과 코치진들에게 일본에 지면 전원 채찍질과 문어방 형식의 노동형에 처하겠다고 협박을 했던 사실이 훗날 밝혀졌다. 이라크가 일본과 극적인 무승부를 거두는 데에는 이러한 동기부여가 작용했을 지도 모르는 일이다.
- 일본에서 이 경기는 테레비 도쿄에서도 생중계가 되기도 했는데 이 당시 기록했던 48.1%의 시청률은 현재 TV 도쿄 프로그램 가운데 가장 높은 시청률을 기록하고 있으며 아직까지도 이 기록이 깨지지 않고 있다. 당연하지만 일본 역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을 눈앞에 둔 경기였으니 시청률이 매우 높았다. 그리고 결국 많은 사람들이 이 비극을 목격하고 말았으니 참담함은 더할 나위가 없었다.
- 그러나 비극의 땅이었던 도하에서 독일과 스페인에 승리하는 기적을 일으키면서 이제 도하는 축복의 땅으로 바뀌었으며, 일본 축구팬들도 도하의 비극을 완벽하게 씻을 수 있었다.
- 다음날 도하의 위성 도시이자 도하의 일부로 취급되는 아라얀에서 또다른 당사자인 대한민국이 포르투갈을 꺾고 기적적으로 16강에 진출하면서 도하는 배성재 캐스터의 표현대로 한국 대표팀에게는 약속의 땅이 됐다.
8. 관련 문서
9.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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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FC 아시안컵 | ||||||
(2011) vs 대한민국 2:2 무 (PSO 3:0 승) | (2019) vs 카타르 1:3 패 | (2024) vs 이라크 1:2 패 | (2024) vs 이란 1:2 패 | |||
FIFA 월드컵 | ||||||
(2018) vs 폴란드 0:1 패 | (2018) vs 벨기에 2:3 패 | (2022) vs 독일 2:1 승 | (2022) vs 스페인 2:1 승 | |||
기타 경기 | ||||||
<colbgcolor=#fec,#320> (1993) vs 이라크 2:2 무 | (1997) vs 대한민국 1:2 패 | (1997) vs 이란 3:2 승 | (2011) vs 대한민국 3:0 승 |
[J] 도하의 비극[J] [K] 도하의 기적[J] [K] [6] 현재는 수헤임 빈 하마드 스타디움[7] 현재는 하마드 빈 칼리파 스타디움[8] 그리고 며칠 후 한스 오프트는 사우디아라비아 축구협회로부터 국가대표팀 감독직 제의를 받았으나 거절했고 계속 J리그에 남아 주빌로 이와타, 교토 퍼플상가,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의 감독직을 맡았다.[9] 1990월드컵과 1994월드컵 아시아 예선은 전 지역 풀리그로 우승팀과 준우승팀만 24강 본선에 진출로 진행되었고 1990월드컵 아시아예선에서는 대한민국이 우승 진출, UAE가 준우승 진출로 24강 본선에 진출하였다.[10] 사우디가 아시아 예선 풀리그 우승(1위)으로 본선에 진출했다.[11] 그리고 이후 일본 축구는 급성장을 계속,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스페인과 독일을 제치고 조 1위로 조별리그를 통과했고, 2024년 현재 진행되고 있는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한 경기만 더 승리하면 독일을 제치고 피파 랭킹 16위에 오르기 직전에 있었으나... 충격적이게도 이라크에 다시 한번 패배하며 랭킹은 18위로 내려갔다.[12] 이라크가 경기 종료 직전, 움란 자파르의 동점골로 기사회생했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가장 치욕적인 장면으로 남겨질 뻔했다. 아울러 대한민국 축구사에서 흑역사로 남을 장면으로 기록됐을 것이다.[13] 아래 동영상에도 나오지만 움란 자파르의 헤딩슛이 들어가 동점이 된 직후, 일본 선수들 몇명은 그대로 드러누워 버렸다. 나머지 선수들도 넋이 나간 듯 서버리고 움직이질 못했으며 일부 선수들은 그라운드에 주저앉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골대만 바라봤다. 아직 주심이 휘슬을 불기 전이라 경기에 임했어야 함에도 1분도 안 되는 시간 사이에 골을 넣지 않는 이상 본선 진출 실패가 확정된 상황이었기에 제대로 경기를 진행할 수 없었다.[14] 1994년 월드컵 본선부터 승점이 3점으로 올랐다.[15] 다만 단순한 일화로만 보기는 그런 것이, 당시 신홍기는 북한 선수단에게 승부조작을 제의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오히려 그 북한 선수가 대처를 잘한 셈이다. 후지모토 겐지의 자서전 회고록에 따르면 실제로 당시 북한 선수들은 귀국 이후 감자농장으로 끌려갔다고 한다.[16] 당시 국내에서는 그의 이름을 이용한 아재개그까지 유행했다. '일본을 자빠트린 움란 자파르' 이런 식이다.[17]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비기거나 이란이 근소한 점수 차이로 승리했다면 사우디아라비아가 탈락하고 한국과 일본이 나란히 본선무대로 진출할 수 있었다.[18] 여기에 숨겨진 사연이 좀 있다. 당시 일본대표팀 주장이었던 하시라타니 테츠지의 회고에 따르면 나카야마의 역전골 이후, 벤치를 향해 기타자와를 투입하라고 재촉했다고 한다. 당시 체력이 바닥이 나던 상황이라 지친 자신들을 대신해 활동량이 넘치던 당시 중앙 밀드필더였던 기타자와 츠요시가 들어와서 이라크의 반격을 차단해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여타 다른 선수들 역시 ‘이 정도로도 충분하니 잠그는 걸로 가자’라는 분위기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뜻밖에도 투입된 선수는 다케다 노부히로였다고 한다. 다케다는 당시 미우라의 소속팀 베르디 가와사키에서 측면 공격수로 뛰던 선수였는데 오프트 감독은 잠그기가 아닌 쐐기골로 아예 승부를 마무리 짓겠다는 의도였다는 것. 하시라타니 역시 자신이 감독이 되고 난 후에야 그 의도를 알겠더라고.[19] 당시 미우라의 유니폼의 맨마킹은 성인 미우라가 아니라 카즈요시에서 따온 KAZU였다.[20] 여기에 대해 주장이었던 하시라타니는 짧게 날아오는 크로스를 봤고 이게 박스 안에 있던 움란 자파르를 향해 날아오는 것을 보고 근방에 있던 미우라에게 나가서 막으라고 하려는 찰나에 골이 터졌다는 것이다. 사실 미우라는 수비수도 아니었고, 당시 주전 사이드백이 부재한 상태였기 때문에 미우라에겐 억울한 부분도 있긴 하다.[21] 당시까지 일본 축구계에서 월드컵 본선 진출을 이루어내는 것은 오랜 숙원이었다. 그런데 막판의 그 찰나를 못 버티고 탈락했기에 가히 '비극'이라는 단어가 적절하다.[22] 한국에선 당시 자료 접근 경로가 부족한 탓인지는 몰라도 수비수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 고로 언론에서도 수비수로 표기하는 경우가 잦지만 그의 포지션은 공격수가 맞다. 참고로 이 자파르 선수가 앞서 2라운드로 열린 대한민국 전에서 경기 막판 동점 골을 넣었던 선수라고 잘못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대한민국을 상대로 골을 넣은 선수는 하비브 자파르 선수였다.[23] 실제 당시 언론이 썼던 표현이다.[24] 한국이 이긴다는 전제 하에 (2+"한국vs북한 골득실차") 이상. 만약 열뻗치게 북한이 한국을 잡았다면? 점수 상관 없이 이기면 이라크가 진출했다.[25] 하지만 이라크의 유일한 패배이자 북한의 유일한 승리가 이라크-북한 경기였다. 한국과 무승부를 거두고 북한에 패배했음에도 북한이 더 약하다고 평가하는 것이 어찌 보면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만일 북한을 이기고 2승 3무를 달성했다면 사우디와 함께 이라크가 월드컵에 갔을 것이다.[26] 이 사건을 계기로 대표팀은 더 이상 B팀을 구성해 차출하지 않으며, AFC에서도 무조건 A팀만 참가하도록 정했다.[27] 농담이 아니라, 한국이 월드컵 지역예선에서 일본의 발목을 잡았던 것이 무려 5번이었다.[28] 월드컵 최종 예선의 앙금이 가시기도 전에,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8강전에서 대한민국과 일본이 다시 리턴매치를 하게 된다. 한일전에 선발 출장한 미우라는 보란 듯이 대한민국을 상대로 선제골을 성공했다. 그리고 일본의 두번째 골은 조호르바루의 환희의 당시 대이란전에서 패색이 짙던 후반 극장골로 연장전 역전극을 이뤄내는데 발판을 마련한 조 쇼지였다. 하지만 난타전 끝에 유상철과 황선홍이 합작한 대한민국에 3-2로 패배하면서 짐을 쌌다.[29] 노정윤이 부상당하는 장면(46초)과 박항서 전 베트남 감독의 모습도 보인다.(2분 6초).[30] 1986년 월드컵도 대한민국 20위였다.[31] 사실 볼리비아와의 대결에서 한 골만이라도 넣고 이겼다면 16강 진출이 가능했다. 조 3등도 성적에 따라서 2라운드 진출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당시 볼리비아도 월드컵 남미 예선에서 홈 고지대로 브라질을 2:0으로, 우루과이를 3:1로 격파하며, 아르헨티나를 제치고 남미예선 3위 통과로 브라질 예선 역사상 첫 패배를 기록하였고 월드컵 본선 1차전 독일전에서 패배했지만 0:1로 선전, 2차전 대한민국과의 경기에서 0:0 월드컵 첫 승점과 클린시트를 기록하고, 3차전 스페인전에서 패배했지만, 1:3으로 스페인을 상대로 월드컵 첫 골을 기록 할 정도로 볼리비아도 당시 전성기였고, 대한민국을 1승 상대로 여겼다.[32] 그러나 4년 후의 대회에서 대한민국은 최악의 성적을 받아들었고, 8년 후의 대회에서는 대한민국 축구 역사상 최초의 외국인 감독이자 명장의 지휘 아래 아시아 최초 4강이라는 금자탑을 세웠다. 이후 유망주 육성 역시 활기를 띠게 된다.[33] 훗날 조 본프레레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에게 1:3으로 졌던 그 경기의 감독이 되었고 2023년에는 파울루 벤투의 뒤를 이어서 대한민국의 감독으로 부임한다.[34] 그로부터 24년 뒤, 그가 우려했던 대로 독일은 결국 마지막 경기인 대한민국전에서 후반 추가시간에 2골을 잇달아 먹고 0:2로 져서 독일 축구 역사상 최초로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이라는 끔찍한 결과를 받았다.[35] 월드컵 매치가 아닌 A매치 전체로 따지면 2002년 이후 대한민국은 독일에게 진 적이 없다. 2002년 월드컵 준결승(패)-2004년 평가전(승)-2018년 월드컵 조별리그(승).[36] 결국 원정 다득점으로 터키에 본선 진출권을 내줬다.[37] 당시 코트디부아르는 북부지역 군벌과 남부 정부군이 3년째 내전을 벌이고 있던 상황이였는데, 드록바가 인터뷰 중 동료들과 무릎을 꿇고 "제발 일주일만 무기를 내려놓고 전쟁을 멈추자"고 호소했고, 정말로 일주일 동안 내전이 멈췄고, 이 휴전은 결국 종전을 만들어냈다. 그리하여 드록바에게 붙혀진 별명이 '전쟁을 멈춘 사나이'이다[38] 워메처럼 대부분의 수비수는 페널티킥을 잘 못 찬다. 센터백 페르난도 이에로, 로날드 쿠만, 풀백 안드레아스 브레메처럼 페널티킥을 잘 차는 수비수도 있기는 하지만 공격력이 뛰어난 소수에 불과하다.[39] 이경기를 승리했다면 잉글랜드는 본선직행이었다.[40] 앞선 잉글랜드홈에서 펼쳐진 러시아와의 대결에서 3:0완승을 거둔적이 있기에 승자승에 앞선다.[41] 비록 4강에서는 독일에게 3:2로 석패하며 결승진출에는 실패했지만 튀르키예는 총 490분의 경기시간 동안 앞서있던 시간은 겨우 13분이었다. 그야말로 근성의 튀르키예를 엿볼수 있었던 대회였다. 튀르키예는 4강에 오기까지 주전선수들의 줄부상, 골키퍼의 퇴장, 경고누적 출전금지등 온갖 악재를 갖고 있었지만 기어코 4강에 오른것이다.[42] 플레이오프 상대가 3번 연속 남미예선 5위로 올라온 우루과이였는데 이 팀은 코스타리카를 플레이오프에서 꺾고 본선에 가서 준결승까지 진출했을 정도로 강했다. 그러나 4년 뒤, 조별리그에서는 코스타리카에게 3-1로 대패한다.[43] 이것보다 경기 수가 더 많이 나올 수 있는 방법이 있긴 하다. 아시아 1차 지역 예선 참가 팀이 최종 예선까지 진출, 조 3위로 아시아 플레이오프를 거쳐 대륙 간 플레이오프를 뚫고 본선에 진출한 뒤 준결승까지 올라가면 되는데, 그러면 1차 예선 2경기 + 2차 예선 2경기 + 3차 예선 6경기 + 최종 예선 8경기 + 아시아 지역 플레이오프 2경기 + 대륙 간 플레이오프 2경기 + 조별 리그 3경기 + 16강 1경기 + 8강 1경기 + 준결승 1경기 + 결승 또는 3, 4위전 1경기 = 총합 31경기가 된다. 그러나 아시아 지역 1차 예선을 치를 정도면 엄청난 약체일 뿐만 아니라 운 좋게 3차 예선까지 갔다 해도 3차 예선에서 대한민국이나 일본 같은 아시아의 강팀들에게 갈아 마셔질 확률이 거의 99.9%인지라 사실상 불가능이라 봐도 무방하다. 참고로 그 레바논도 2014년 월드컵에서는 2차 예선부터 시작했다. 그러면 1차 예선에 참가하는 팀들은 어떤 약체인지 안 봐도 비디오일 것이다. 게다가 한국이나 일본을 뚫고 본선에 진출했다고 쳐도 본선에서는 아시아 지역 1차 예선을 치를 정도의 팀을 50-0 급으로 이겨버릴 브라질이나 아르헨티나 같은 팀들이 기다리고 있다.[44] 여기엔 사연이 있는데 당시 프랑스는 1993년 4월 28일, 스웨덴과의 지역예선 6차전 경기 이후 무려 4개월간 경기가 없었는데다 그 기간동안 스웨덴이 2승, 불가리아가 1승 1패를 기록했던 것이다. 그래서 심리적으로 불안감을 느끼던 와중에 1993년 8월 22일 속개된 대 스웨덴전에서 그만 1:1 무승부를 기록했던것.[45] 심지어 발롱도르 수상자였다.[46] 2015 아시안컵 때 오만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을 맡은 그 사람이다.[47] 2006년 독일 월드컵 우승 감독[48] 나미비아가 모잠비크에게 홈, 원정 모두 이겼다.[49] 여담으로 이는 연장전 제외 대한민국의 A매치 역사상 가장 늦은 시간에 나온 골이다. 종전 기록은 2018 FIFA 월드컵 러시아 조별리그 독일전 당시 손흥민의 골. 연장전을 포함할 경우에는 2011 AFC 아시안컵 카타르 4강 일본전에서 120분에 나온 황재원의 골이다.[50]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도하의 기적으로 한국이 월드컵에 진출한 후 월드컵에서 독일, 스페인과 한 조가 됐었는데, 이번에는 카타르에서 열리는 월드컵에서 일본이 이 두 팀을 만나게 됐다.[51] 마라카낭의 비극과 미네이랑의 비극도 문서로 쓰여있다.[52] 만화 내용에서 한국팀은 실로 괴물들이 모인 집단이다. 하프라인에서 중거리 슛을 날려 골을 넣는 홍성보에다, 한국 골대에서 일본 골대까지 드리블하여 골을 넣는 최윤화까지.[53] 위의 애니메이션 부분은 자막이 잘못된 것이며, 방영 시점이던 1999년의 내용에 맞게 도하의 기적 관련이 아니라 월드컵에서 1승도 하지 못한 것을 분해 한 내용으로 바뀌었다. 정신연령은 고등학교 2학년인 코난이 이때만큼은 아가사 박사의 탁자 위에서 진짜 초등학교 1학년처럼 드러누워 땡깡을 부렸다.[54] 참고로 이 에피소드는 한국에서도 현지화되어서 방영되었는데, 도하의 기적과 관련된 내용은 당시 한국 실정에 맞게 2002 한일 월드컵과 관련된 내용으로 바뀌었다. 한국에는 이 에피소드가 2004년에 방영되었기 때문에 독일전에서 석패했던 이야기가 나왔다.[55] 정확히는 UEFA 유로 1996부터다.